흔 적
박 인 영
이 세상에 가장 예쁜 우리 누나
옥동자를 낳았단다 아가같은
막내누나 아가처럼 엉엉울며
낳아놓은 우리 아가 엉덩이엔
푸른 점이 꽃물처럼 번졌단다
엄마야 내가 어려 누나와 함께
목욕을 했을 때에 우리 누나
엉덩이엔 푸른 꽃이 피어 있어요?
옛날에 옛날에 머언 우리 나라 땅에는
사람들이 어디든지 놀듯이
가기를 좋아했단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쉬엄쉬엄 떠나기도 좋아했단다 사람들이
달이 뜨고 별이 지는 동쪽으로
놀듯이 떠났다가 가다가
쉬엄쉬엄 가다가 떠났다가
길목마다 지키고 선 낯선 사람들에게
옷 벗기고 매를 맞고 누나를 잃고
산 넘고 들을 건너 강가에 와서
사공한테 한 십 년 품 살아 주고
강 넘고 바다 건너 산골에 와선
산신한테 한 십 년 제 지내 주고
하늘 보며 눈물로 원망도
하다가 정신차려 용서해주십사 기도도
드리다가 큰 맘 먹고
장광엔 나무 한 짐 지어다 놓고
부엌이며 장독대엔 물도 가득
길어놓고 내일 아침 찬거리 마련해 놓고
안방엔 훗훗하게 군불도
지펴놓고 주인 몰래 몸만 빼어
살금살금 한 밤중에 도망가다 주인 몰래
논둑길 벼이삭 서걱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주인님 기침소린 줄 알고
어둑어둑 밭둑길 베어놓은 풀더미에 주인집
牛馬인 줄 알고 펄떡 뛰어 그만
뚝 넘어지니 눈알은 뱅뱅
뼈마디는 옥신옥신
엉덩이엔 푸른 멍이
꽃판처럼 남았더라 빡! 하고
연꽃처럼 되었더라....
sophia perennis
